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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루용) 나폴리탄 괴담 - 청운아파트 606호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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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너무 흔하고 뻔한 레파토리의 이야기라서 쓸까 말까 고민이 많았는데, 그래도 적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적어둬.

뻔한 괴담으로 치부하지는 말아줘.
이거 꽤 중요한 이야기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아무리 헛소리 같아도 꼭 머리에 담아둬야 해.

이 집에서 내가 살았던 이야기를 해줄 테니까.







그러니까...지금으로부터 한 5년 전이었나?

내가 20대 후반에 전세금만 간신히 마련해서 방을 구하러 다닐 때의 일이었지.

물론 피땀 흘려 모아온 돈도 서울의 집값 앞에서는 고작 몇개월 분의 월세밖에 되지 않더라고.

억울하지만 어쩌겠어.
집값이랑 물가를 얕본 내 잘못이지.

그렇게 그냥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월세방 아주머니가 아주 웃기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더라고.

글쎄, 서울에 있는 아파트가 고작 1억 대에 팔리고 있다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이야기를 좀 더 나눠봤는데, 수많은 아파트 중에서 단 한 곳, 청운아파트 105동 606호만 그 가격에 팔리고 있더라고.

듣자 하니 해마다 가격을 내리는데도 벌써 4년 째 공실이라 가격을 확 내린 거라던데...이유야 뭐 뻔하지.

엽기 자살 사건과 연관이 있던 집이더라고.

그것도 서울 전역을 강타했던 충격적인 일이어서 그런지 아무리 가격을 낮춰도 팔리지 않았던 거지.

뭐, 그분에겐 애도를 표하지만 나한테는 좋은 일이었어.

나를 만류하는 아주머니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결국 공인중개사와 연락이 되고, 그 집을 계약하는데 성공했지.

방에 들어가 봤는데 집 진짜 좋더라?

남들은 저주가 깃들었다느니 아직도 시취가 난다느니 하는데, 이미 벽지 다 뜯어내고 고친 집에서 냄새가 나봐야 얼마나 났겠어.

방향제까지 갈 것도 없었지.

원래 기르던 화분 몇 개 두니까 냄새도 하나도 안 나고, 분위기도 확 살더라고.

이전에 살던 분께는 감사의 의미도 조금 담아서 명복을 빌어 드리고, 이 아파트에서의 삶을 시작했지.

주민 분들은 모두 친절했어.

솔직히 소문 속의 집에 입주했다고 해서 뭔가 편견을 갖는다거나 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처음에야 좀 과하게 챙겨주고 걱정해주는 느낌이 조금 있긴 했지만 나중에는 완전히 평범한 이웃 사이가 됐지.

딱 한 분을 빼면 말이야.

항상 분홍색 조끼를 입고 계시는 할머니.

그분은 언제나 말도 없고, 특히 나는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셨어.

다른 사람들한테도 무뚝뚝하긴 하지만 나는 아무리 다가가거나 말을 걸어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거든.

진짜로 그냥 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

그래서 그냥 포기했지.
어차피 이웃은 많으니까.

그리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였나?

할머니가 갑자기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네셨어.

그것도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야.

처음에는 이분이 사람을 착각하시나...했는데 민성아, 하고 정확하게 내 이름을 부르시더라고.

드디어 할머니가 나한테 마음을 여셨구나 생각했지.

할머니와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그날 밤부터, 내 일상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지.




문득 잠에서 깼어.

새벽 2시였지.

오전 7시까지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잠드는 나로써는 신기한 일이었어.

당연히 얼마 못 자고 일어났으니 졸렸고, 나는 그냥 물이라도 마시고 다시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리고 신기한 걸 발견했지.

책장이 옆으로 살짝 밀려 있었던 거야.

그리고 본 적 없는 스위치 하나가 있었지.
하얀색 버튼식 스위치 말이야.

우리 집 스위치는 전부 스크린 패드 형태로 되어 있는데, 그 스위치만 옛날 버튼식 스위치더라고.

처음에는 한 번 눌러볼까 했다가 그냥 말았지.

그리고 잠에서 깼어.

평범하게 침대에서, 아침 7시 정각에.

그날 아침에 할머니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나를 맞아 주셨지.

하루의 시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갔어.

특별한 일이랄 것도 아무것도 없었지.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자리에 스위치가 없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야.

얼마 전 가구 배치를 위해 밀어둔 책장 위치는 그대로인 채로.




또 잠에서 깼어.

새벽 2시였지.

일어난 김에 물이라도 마시자고 거실로 향하는데, 벽에 스위치가 하나 있더라고?

어제 봤던 하얀 스위치 말이야.

분명히 아까는 없었는데.

어제는 그냥 넘어갔으니 오늘은 한 번 눌러볼까 싶었어.

그래서 스위치를 살짝 건드려봤지.


딸깍.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버튼이 안으로 들어간 것만 빼면.

싱거운 기분이었지.

나는 그대로 주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잠에서 깼어.

오전 7시 정각에 말이야.

할머니는 어제와 비슷한 미소와 함께 나를 맞아 주셨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모습에서도 별다른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말야.

하루라는 시간은 또 순식간에 지나갔고, 잘 시간이 돌아왔지.

어젯밤 스위치가 있던 자리에는 또 스위치가 사라져 있었지.

이쯤 되니 눈치가 없어서 문제인 나도 감이 오더라고.

아, 꿈이었구나.

별것도 아니면서, 굉장히 현실적인 꿈.

꿈이라는 걸 알고 나니 또 별 생각은 안 들더라.

그냥 스위치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리고 잠에 들었지.





또 잠에서 깼어.

새벽 2시였어.

이번에도 꿈이구나, 하고 벽으로 향했지.

없었던 스위치가 그 자리에 있었어.

어제 눌렀던 그대로, 스위치가 안쪽으로 들어간 상태로 말이야.

그 스위치를 한참 보다가 손가락으로 스위치를 한번 더 눌렀어.


찰칵.


사뭇 다른 소리와 함께, 스위치가 사라졌어.

대신 그 자리에 문이 하나 생겼지.

이 집과 어울리지 않는, 굉장히 낡은 갈색의 나무 문 말이야.

문을 열어볼까 생각은 했는데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서 열지는 않았어.

주방으로 발을 옮겼고, 또 잠에서 깼지.

오전 7시 정각.

오늘은 할머니가 훨씬 밝아진 얼굴로 말을 걸었어.

그리고 나한테 계속 이야기하시더라고.


김민지. 김민지.


그리고 그 뒤로 이웃들과의 관계가 조금 뜸해졌어.

먼저 말을 걸면 대답은 하는데, 어딘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더라고.

그래서 며칠 이야기해보다가 그냥 포기했지.

그렇게 며칠간은 별일 없이 흘러갔어.

꿈도 더 꾸지 않고,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났지.




그리고 또 잠에서 깼어.

새벽 2시.

이제는 꿈이라는 걸 알아.

그리고 문이 생긴 이후로 사람들과의 관계가 틀어졌다는 사실도 알아.

대체 저 문이 뭐길래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궁금해서 문을 열어봤어.

방 안에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책상, 마네킹들, 침대가 있었지.

방에 들어가는 순간 철컥, 하고 문이 잠겼어.

문을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더라고.

꿈을 깨려면 주방으로 나가야 하는데, 문이 잠기면 어떡해?

꿈 속에 갇혀버린 거지.

나는 방을 탈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

마네킹들을 살펴봤지.

평범한 플라스틱 마네킹이었지만, 얼굴만큼은 진짜 사람 같았어.

그것도 우리 아파트 입주민의 얼굴 말이야.

당연히 내 얼굴을 가진 마네킹도 있었지.

솔직히 보자마자 부숴버리고 싶었어.

근데 그랬다가는 진짜 좆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일단 마네킹은 냅두고 침대로 향했지.

가까이 가자마자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잔뜩 들어찼어.

괴담에서는 항상 이런 일이 생기면 절대로 그대로 행동하면 안 된다고 했지?

나는 침대에 눕지 않으려고 몸을 허우적대면서 충동을 떨치려고 애썼어.

그러다 마네킹 하나가 손에 잡혔고, 반사적으로 그걸 던져버렸지.

마네킹은 침대에 스르륵 누웠고 충동은 사라졌어.

낮에 본 할머니랑 똑같이 생겼더라고.


끼이익.


그리고 문이 열렸어.

이제 나오라는 것처럼.

문에는 붉은 글씨로 이름 세 글자가 적혀 있었어.


김민지.


주방으로 향했고, 꿈에서 깼지.

이웃들은 대놓고 나를 피했어.

할머니는 나타나지 않았지.

경찰이 출동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어.

그냥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할머니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거야.





그 뒤로 또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지.

딱 한 달 동안 말이야.

내가 눈을 뜬 곳은 그 방이었어.

새벽 2시, 침대와 마네킹이 있는 낡은 방.

문은 굳게 잠겨 있었어.

어떻게 나가는지는 대충 예상이 됐지.

가장 먼저 나를 피했던 아저씨를 골랐어.

침대에 눕히고 방을 나섰지.

그 사람의 이름은 박상호였어.

그 뒤로도 매달 1번씩 꿈을 꾸었지.

아파트에는 사람들이 한 명씩 사라져 갔어.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오고야 말았지.

마네킹은 단 한 개만 남아 있었어.

내가 지금껏 버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단 하나의 마네킹 말이야.

꿈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깨지지 않았어.

문이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았지.

내가 나가기 위해서는 선택할 필요가 있었어.

내가 나가느냐, 아니면 내가 눕느냐.

결과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겠지.

그래도 나는 선택해야만 했어.

어떻게든 이 꿈에서 깨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네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내 선택이 옳았던 거겠지.

문이 열려 있을 거야.

뒤돌아서 나가.

그리고 이 집을 떠나 줘.

다시는 돌아오지 마.

누구도 들어오게 하지 마.

이 아파트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지워 줘.



부탁해.




출처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apolitan&no=26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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